인사동 로고

인사동

전체메뉴

    마감마감
  • 식당 이미지
  • 국명숙 개인전

    기본정보
    • event_available기간 2024-11-27 ~ 2024-12-02
    • account_circle업체명인사아트센터
    • location_on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 smartphone전화번호02-736-1020
    요약정보
      국명숙 개인전
  • 회화는 크게 형태를 중시하는 유형과 색채를 중시하는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중에서 국명숙은 후자, 즉 형태보다는 색채를 위주로 하는 작가에 속한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 색채들이 포개져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는 색채야말로 역대 미술가들이 조형을 구축하는 중핵적인 요소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칸딘스키는 색채를 단순히 시각적 요소가 아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적 도구로 비유하였는가 하면 앙리 마티스는 색채를 통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였고, 빈센트 반 고흐는 색채대비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였다.

    그 후에 등장한 추상 작가들의 경우 색의 활용도는 더욱 높아져 작품의 감정, 분위기, 의미를 전달하는 주된 수단이 된다.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국명숙의 이런 경향은 첫 개인전부터 30년이 흐른 현재까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한다.


    물론 초기의 작품이 순도 높은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구성을 중시하는 특성을 보였다면 근래의 작품은 분할된 화면과 유기적 형태감을 띠면서 중간색부터 원색까지 폭넓은 색채의 스펙트럼을 지닌다.


    이런 색채 위주의 작업은 대학 시절 하동철 교수(1942-2006)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색채화가 하동철은 ‘초월의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빛과 색채를 유난히 강조하였는데 국명숙 또한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색채를 위주로 한 작품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스승이 색과 빛이 융화된 작품을 통해 초월적 표지를 암시하였다면 국명숙은 그의 과거에 대한 추억과 삶에서 주제를 가져오고 있으며 그것을 현재적 삶에 접목시킨다. 국명숙의 작품은 색채를 근간으로 하되 거기에 다양한 수법을 결합함으로써 시각적 묘미를 덧붙인다.


    돌가루를 사용하여 재질감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고 혼합재료로 릴리프 효과를 내기도 하며 바둑판무늬의 채색된 한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물감을 흘리고 번지게 하며 종이에 물감을 찍어 붙이거나 드라이한 효과를 내는 등 여러 표정을 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작품에 조형적 리듬감을 부여한다.


    국명숙의 그림에 등장하는 연두, 초록, 청록, 보라, 파랑, 회색, 검정 등의 색들은 작가의 체험과도 연관되어 있다.

    가령 퍼플은 그 색을 유난히 좋아하신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고 그린은 알프스와 지리산의 추억에서 비롯된 것이며, 블루는 고요하고 투명한 남태평양 타이티 해안이나 그리스 산토리니, 북유럽의 청정한 바다, 섬진강 물빛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생을 즐기는 화가 같았으면 사진과 같은 풍경화를 제작했을 테지만 그때의 감흥을 중시하는 국명숙은 색의 조합과 변주로 이를 승화시켰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는 자신의 설렘과 추억이 투영되어 있다.


    이런 감정과 더불어 그의 화면에는 강렬한 색상의 대조가 이루어진다. 초록이나 연두 밑에 검은 그림자처럼 저채도 색상이 깔리거나 명료한 대조를 이루는 형국이다.

    또한 화사한 듯하면서도 군데군데 보색을 얹히거나 부조화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격과 불규칙한 특성은 때로는 길을 잃은 듯한 망연함, 좌절, 실망처럼 삶의 실재를 암시하는 인상을 준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인간 삶의 본질을 진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고민과 낙심, 내적 갈등 따위와 씨름하느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다.

    국명숙의 <묵상>은 이점을 직시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 씨름하는 이 수수께끼가 도대체 어떤 뜻을 지니는지 성찰케 한다.


    왜 인간의 행복을 저해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 문제에 필자가 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사색해 본다면 모종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즉 시련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장애물 같은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과 나약함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실존의 비밀에 대해 아주 제한된 실마리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만일 고통이 진정한 인간됨을 알게 한다면 이 또한 봉인된 문제를 푸는 기막힌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작가 필립 얀시(Philip Yancy)가 말하듯이 “실존의 진리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곳에 존재한다.” 이 말에 호응하듯이 국명숙의 회화는 인간의 고통을 간과하지 않는다.


    흑점 또는 반점들이 화면에 도사리고 있고 어둠침침한 색조, 색의 불협화 등은 우리의 세상이 무언가 결여되어 있으며 불완전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세상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좌초하고 치열한 갈등을 되풀이한다. 우리는 매일 무시무시한 광경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명숙은 우리의 세상을 밝게 내다본다. 믿음의 눈으로 그가 사랑하는 세계, 소망하는 세계를 바라본다.

    밝고 찬란한 색을 통해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것들이 차츰 제 모습을 찾아간다. 종국에 그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끝없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곳이요 찬란한 빛이 피조계를 비추는 생명 충일한 세계다.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 마지막에는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엠피리언’(Empyrean)에 들어와 영광스런 광경을 목격하고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에” “변함없이 바퀴가 돌아갔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단테는 우주에 대한 가장 깊은 진실은 우주가 ‘사랑’(The Love)에 의해 생명을 얻고 신의 사랑에 의해 유지되고 회전한다고 굳게 믿었다.


    이보다 세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어떤 수사나 은유로 그렇게 표현하기보다 실제로 신의 사랑이 우주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신의 사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만물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그의 말은 비관과 절망으로 점철된 시대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필자는 국명숙의 회화에서도 비슷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가 화면을 파격과 불규칙으로 운영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무질서하며 궤도에서 일탈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매번 충돌하고 갈등하며 대립하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것은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에 가능하다. 신의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생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것이고 이것이 인간이 낙담하거나 표류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국명숙의 회화에서 우리가 힘듦 가운데서 어떤 희망, 어둠 가운데서 어떤 찬란함, 부정적 요소 가운데서 긍정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신의 손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곤란에 처했거나 메말라간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떠올려볼 수 있음직하다. 난관과 고됨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인사동 로고

AddressInsa-dong Advertising Hall, 19 Insa-dong 11-gil Jongno-gu Seoul
Tel+822-737-7890~1

COPYRIGHT(C) [Insa-dong Advertising Hall] ALL RIGHTS RESERVED.

  • 종로엔 다있다
  • 종로구청소식
  • 유튜브
  •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