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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크루스테스와 히드라

    판단과 상상에 관한 조형적 시론

    기본정보
    • event_available기간 2025-06-25 ~ 2025-07-07
    • account_circle업체명갤러리 은
    • location_on주소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5-1
    • smartphone전화번호070-8657-17
    요약정보
      프로크루스테스와 히드라

  • [전시서문]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크르를 중심으로


    현대 도시에서 자연은 더 이상 순수한 실재 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 체계와 사회적 질서 속에서 매개되고 가공된 채, 하나의 시뮬라크르(simulacre)로 작동한다. 김주환 작가는 도시의 가로수를 통해, 인간 중심적 재현의 구조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시뮬라크르를 실재(reality)를 복제하고 대체함으로써, 결국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기호의 체계로 정의한다. 도시의 가로수는 더 이상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관리되고 절단되며, 필요에 따라 보존되거나, 심지어는 심미적 기호로 소비된다. 이처럼 자연은 하나의 생태적 실체가 아니라, 기획되고 편집된 ‘자연의 이미지’로 기능한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기호로서만 존재하는 시뮬라크르로 변모한다.

    김주환 작가는 이러한 기호화 된 자연, 즉 ‘인간의 판단과 인식의 체계로 실제화 된 자연’을 해체하고 사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와 ‘히드라(Hydra)’라는 두 개의 상징을 제시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침대 길이에 맞게 사람의 몸을 잘라내거나 늘려서 맞추는 잔혹한 방식으로 자신의 기준에 타인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폭력의 상징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고 다루는 방식, 즉 인간의 틀에 맞춰 자연을 재단하고 정형화하는 관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시뮬라크르의 두 번째 단계 — 실재를 왜곡하여 모사하는 단계 — 와 맞닿아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적절하게’ 수정된 이미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히드라’는 머리를 자르면 다시 두 개가 돋아나는 괴물로, 억제와 통제에 저항하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김주환 작가는 가지치기된 나무에서 다시 돋아나는 새로운 생장점을 히드라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는 철저히 통제하려는 인간의 기호 체계 속에서도 여전히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실재의 잔여, 혹은 자연 그 자체의 생동이 균열처럼 솟아오르고 있다는 암시다. 다시 말해, 히드라는 시뮬라크르의 구조에 대한 저항이자 균열이며, 기호 뒤편에 남은 실재의 흔적이다.



    이러한 연작은 단순한 조형적 탐구를 넘어, 인간의 인식과 자연 사이에 가로놓인 기호 체계를 시각적으로 해부한다. 이 작업은 자연을 실재로서 회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실재로 여겨졌던 자연이 얼마나 깊이 매개되고 왜곡되어 왔는지를 드러내는 탈은폐의 장치로 기능한다. 여기서 자연은 단순한 대상이 아닌, 사유를 시작하는 질문의 기점이 된다.



    김주환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자연을 인식할 때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구조와 그 허위성을 들춰냄으로써, 인간 중심적 세계 속에서 실재와 비실재, 기호와 실체의 경계를 재사유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자연’이라는 익숙한 개념을 낯설게 만들어, 시각적 경험과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지점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유윤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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